사진책 읽기 343골목사진가 김기찬 님을 그리는 골목노래― 골목안 풍경 그후, 아! 공중만리강재훈 사진눈빛 펴냄, 2016.9.10. 3만 원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김기찬 님은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을 모두 여섯 권 선보였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만 사진으로 담지 않았습니다만, 《역전 풍경》이라든지 《잃어버린 풍경》이라든지 《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같은 사진책도 내놓았습니다만, 이녁 사진길은 “골목안 풍경”으로 갈무리해 볼 수 있습니다. 사진가 김기찬 님은 골목길을 거닐면서 골목마을에서 골목사람을 이웃으로 만납니다. 처음에는 이웃이요, 이내 동무가 되고, 시나브로 한마을 사람이 되어요. 처음에는 사진기를 쥐고 마실을 다니던 이웃이자 동무였다면, 어느덧 ‘골목사람’이 되고 ‘골목사진가’로 거듭나요. 그저 사진만 찍는 매무새가 아니라, 그저 기록만 하는 몸짓이 아니라, 그저 구경꾼이나 손님이나 나그네가 되는 발걸음이 아니라, 그저 먼발치에서 넘겨다보는 눈짓이 아니라, 그저 남남으로 여기는 눈길이 아니라, 온몸하고 온마음으로 다가서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진찍기가 되기에, 김기찬 님이 빚은 《골목안 풍경》은 사람들 가슴을 따사로이 보듬는 너그러운 숨결이 이야기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진 한 장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2016년 9월, 사진책 《골목안 풍경 그후, 아! 공중만리》(눈빛 펴냄)가 나옵니다.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나란히 붙인 이 사진책은 김기찬 님이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김기찬 님이 지난날 거닐던 골목을 오늘날 새로운 마음으로 거닐어 본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강재훈 님이 찍은 사진을 담습니다.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인 강재훈 님은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가던 길(출퇴근 길)에 골목길을 거닐어 보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 길을 굳이 안 걸었다 하며, 지난날에는 일터로 오가는 길에 따로 골목길을 거닐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해요. 어느 날 문득 “좁고 가늘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안쓰러워했던 사진가 김기찬”이 떠올라서, 이녁 발길이 머물던 골목길을 걸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현동·공덕동·중림동·만리동, 이렇게 네 군데 골목길을 거닐면서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갔다고 합니다.굳이 행정구역으로 나누자니 나눠진 동네지만 결국은 길 건너 이웃이고 한동네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 이곳이 최근 몇 년 새 재개발에 밀려 옛 모습을 잃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변해 가고 있다. 그 공간을 나는 ‘아! 공중만리’라 이름 붙이고 마지막 남은 골목 풍경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작가 말/175쪽) 사진가 김기찬 님이 골목길을 거닐던 무렵에도 골목마을은 한창 재개발로 들썩였습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나 1990년대 모두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서도 툭하면 골목마을을 밀어내어 아파트로 우지끈 뚝딱 바꾸는 건설정책만 마련하기 일쑤였어요. 1971년에 ‘광주대단지 사건’이 있기도 했고, 전국체전을 벌이면서 골목마을을 가리켜 ‘외관상 바깥손님한테 보여주기 나쁘다’는 핑계로 하루아침에 쓸어내기(철거하기)도 했어요. 1980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곳곳에서 끔찍한 ‘마을 쓸어내기(골목마을 철거)’를 밀어붙였지요. 철거바람이 한창 불어도 골목마을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골목마을에서 조용하면서 조촐하게 살림을 지었어요. 사진가 김기찬 님은 바로 이 대목을 눈여겨보았다고 느껴요. 작고 수수하지만, 바로 이 작고 수수한 살림에서 이웃이 서로 아끼면서 보듬는 모습을 눈여겨보았고, 이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겼어요. 김기찬 님이 흙으로 돌아간 2005년 뒤부터 2016년까지 헤아리면 예전보다 더 빠르고 크게 ‘마을 쓸어내기’가 불거집니다. 이와 맞물려 ‘마을 살리기’도 조금씩 일어나요. 그리고 예전에는 낮고 수수하며 조용하던 골목마을에 골목집 말고 높다란 빌라가 부쩍 많이 생겼어요. 작은 골목집을 건사하며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던 늙은 할매하고 할배가 돌아가시면, 이 작은 골목집은 으레 헐리면서 빌라로 바뀌어요. 빌라가 골목마을에 늘면서 햇볕이 가려지는 집이 늘어나요. 햇볕이 가려지는 집은 어느새 헐리고 다시 빌라로 서면서, 빌라랑 빌라 사이에는 아무것도 들어서지 못하는 차가운 바람만 불곤 합니다. 바야흐로 골목집에서 빌라로 바뀌는 골목마을은 지난날하고 사뭇 다릅니다. 마을이 통째로 밀려서 사라진 뒤 아파트가 들어서도 골목마을은 바뀌는데, 빌라에다가 자동차가 늘면서 골목빛이 무척 달라져요. 그러나 빌라랑 자동차로 골목 모습이 바뀌어도 골목마을에 사는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예전보다 ‘햇볕 한 줌 나누기’가 만만하지 않은 ‘빌라+자동차 마을’로 바뀌어도 그 작은 햇볕 한 줌을 헤아리면서 바지랑대를 세우거나 빨랫대를 놓거나 빨랫줄을 잇습니다. 헌 스티로폼에 흙을 담는 꽃그릇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요, 빌라 옥상은 빨랫줄로 춤추거나 옥상텃밭으로 바뀌곤 해요.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빨랫줄을 높이 치켜세운 바지랑대가 반갑다. 대문간이나 집 앞에 내놓은 건조대에 내건 빨래도 있지만, 콘크리트 바닥에 펼쳐진 빨래도 있다. 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그 위에 식구들의 속옷과 양말 등을 펼쳐 너는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작가 말/178쪽) 사진기자 강재훈 님이 일곱 해 동안 조금씩 거닐며 지켜본 골목마을 이야기가 사진책 《골목안 풍경 그후, 아! 공중만리》(눈빛,2016)에 살며시 깃듭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이 담은 골목안 모습하고 함께 맞대고 살피자면, 지난날에는 골목마다 어른도 아이도 넘실거렸지만, 오늘날에는 어른도 아이도 크게 줄면서 자동차랑 오토바이가 부쩍 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골목마을 한켠에 아직 평상이 있지만, 지난날처럼 골목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오순도순 살림을 짓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듯이,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골목마을을 떠나 아파트로 가느라 골목마을이 쓸쓸해 보일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듯이 골목마을에서도 아이들 노랫소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 강재훈 님은 출퇴근 길이라는 짧은 마실길에서도 바지런히 아이들 꽁무니를 좇고 어른들 손길을 살핍니다. 오토바이하고 자동차한테 차츰 빼앗기고 마는 골목길에서 사람들 살림살이를 느껴 보려고 합니다. 다만 조금 더 깊고 넓게 스며들지는 못했구나 싶어요. 지난날 김기찬 님은 골목길만 거닐지 않고, 마당에도 들어서는 이웃이 되었고, 골목집 대청마루에 앉아서 골목사람하고 동무가 되어 이야기꽃을 펼쳤으며, 마을 한쪽에서 자그맣게 피어나는 잔치판에까지 한몫 끼었습니다만, 사진기자 강재훈 님은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며 골목을 오간 터라 이와 같은 ‘속속들이 파고드는 이웃 발걸음’까지는 못했지 싶어요. 출퇴근길에 들른 골목이고, 취재를 가느라 바빠서 얼마 머물 수 없던 골목이었을 테니까요.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는 이 골목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작고 수수한 마을살림이 앞으로도 곱고 살가이 흐를 수 있을까요? 바뀌는 모습인 골목이든 한결같은 모습인 골목이든, 우리는 이 골목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려나요? 하루아침에 허물리면서 사라지기에 바쁘게 ‘기록’을 해 두어야 할까요? 옛 기억이나 추억을 아로새기려는 뜻으로 기록을 잘 해 두면 한결 값어치가 있거나 뜻이 있을까요? 기록을 한다면 무엇을 기록할 만할까요? 낡은 집? 헐린 집? 빈 집? 스프레이로 뿌린 시뻘건 글씨? 새로 올라온 아파트? 아니면 오늘도 골목에서 정갈하면서 수수하게 짓는 살림살이? 골목집하고 골목길을 이쁘게 가꾸는 골목사람 손길? 우리는 ‘기록’을 해야 할까요,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한 가지를 더 묻자면, 우리는 ‘골목사람 눈길’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가요? ‘아파트 주민이 골목마을로 마실을 오는 눈길’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가요? 이 골목이 헐리면 다른 골목으로 옮겨서 살아갈 ‘골목사람 마음’으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가요? ‘이 골목이 헐리면 다른 골목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아파트 주민 마음’으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가요? 골목집은 손질하고 고치고 다듬으면서 쉰 해뿐 아니라 일흔 해도 백 해도 거뜬히 버텨요. 아파트는 서른 해만 지나도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들썩여요. 오래된 골목마을이 오래가는 마을살림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다면, 비록 오늘날 이런저런 재개발 정책만 불거진다고 하더라도, 골목마을 사람들 스스로 그 고운 삶터를 고이 지킬 만하리라 느껴요. 어쩌면 앞으로는 한결 따사로우며 살가운 ‘골목꽃 이야기’가 피어날 수 있어요. 사진책 《골목안 풍경 그후, 아! 공중만리》는 골목길을 거닐면서 이야기 한 자락을 찾으려 했다는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그러나 골목길을 너무 바삐 거닐었다는 느낌이 짙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여름에는 새벽 다섯 시에도 골목이 복닥거리고, 저녁 일곱 시가 넘어도 골목이 환해요.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이러한 흐름을 골목 한켠에서 고요히 누려 본다면, “골목안 풍경”을 바라보는 손길이나 눈길이나 발길이나 마음길이나 사랑길은 한결 느긋하면서 너그럽고 넉넉한데다가 즐거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돼요. 기록하지 말고 사진을 찍으면 돼요. 기록도 사진도 없이 그냥 나긋나긋 거닐어도 돼요. 사진가 김기찬 님은 “골목안 풍경”을 ‘다큐멘터리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어요. 김기찬 님이 한 일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니라 ‘이웃 이야기’나 ‘동무 이야기’나 ‘우리 이야기’를 사진으로 들려주려는 눈빛 밝히기였다고 느껴요. 사진기자 강재훈 님도 어깨에서 힘을 좀 빼고서 ‘우리 이야기’로 느낄 골목을 바라보려 했다면, “골목안 풍경 그 후”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도 스스로 “골목마실”을 새로운 이름으로 붙이면서 즐기는 나날과 사진을 이룰 만하리라 생각해요. 부디 앞으로도 골목길에서 이웃을 만나면서 스스로 골목사람이 되는 마실을 이어가시기를 빕니다. 2016.12.7.물.ㅅㄴㄹ(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사진은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어 고맙게 붙일 수 있었습니다 *
골목안 풍경 그후에 부쳐 - 임종업(한겨레신문 선임기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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