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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낯선 이들을 냉대하지 말라, 천사일지 모르니. 파리의 책방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걸려있는 글로 시작한 이 책은 얼마 전 익었던 <작은 책방, 우리 책 좀 팝니다>의 저자들이 2011년에 펴낸 책이다. 작은 책방에 전작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발견해서 빌려올 수 있었다. 사서는 아니라는 그들. 하지만 책과 도서관에 대한 사랑은 전공자들 못지 않은 듯 하다. 작은 책방을 꾸리는 것으로 모자라 이렇게 유럽으로 직접 떠나보기까지. 이들이 꿈꾸는 책마을은 꿈에 불과한 것일까? 그 질문을 가지고 떠난 유럽 책여행은 따뜻하면서도 진지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우리를 과거로 인도한다. 그것은 꼭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는 누구였는가를 둘러싼 기억들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책을 읽은 어린아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프롤로그에 등장한 이 글만큼 책에 대해 잘 규정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읽어서 그 내용이 좋아서 책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 책을 읽었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의 장점이 아닐까. 저자는 요즘 책을 잘 안 읽는 이유를 책에 대한 그리움이 없기 때문에, 결핍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예전엔 책이 귀해서 책 한 권 한 권이 소중했지만, 지금 30대, 그 아랫세대에겐 그런 그리움이나 결핍이 없다. 오히려 책은 어른들이 주는 숙제일 경우가 더 많았으리라. 더 재미있는 텔레비전, 영화, 게임이 있는데 어른들은 자기들도 읽지 않는 책을 던져주면서 계속 읽으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책을 사랑할 수 있을까. 부부는 여행을 통해 만난 곳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우선 도서관. 이탈리아의 공공도서관, 스위스의 공공도서관, 프랑스의 대통령 기념도서관, 영국 국립도서관을 만나본다. 2부에서는 서점을 만난다. 이탈리아, 프랑스, 런던을 거치며 대형서점과 골목서점, 전문서점을 골고루 만난다. 3분에서는 동화마을로 떠나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노키오, 하이디, 피터래빗, 요즘 사랑받고 있는 로알드 달 뮤지엄까지. 4부에서는 유럽 책마을을 살펴본다.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세계 책마을의 시작과 끝이 된 영국 헤이온 와이 책마을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먼저 도서관. 프랑스의 미테랑 도서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대통령 미테랑.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훌륭한 독서가였으며 15권의 저술을 남길 정도로 지식인이었고, 생애 마지막 업적으로 프랑스 최고의 국립도서관을 남겨준 교양인이었다고 한다. 파리 시내 버려진 땅이었던 철도 기지창에 세워진 미테랑 도서관은 마치 책을 펼쳐놓은 듯한 형태의 20층 건물 네 개 동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건축 중인 현장에도 자주 들러 애착을 표시했으며 그의 건강이 나빠지자 공사 담당자들은 건축을 서둘렀다고 한다. 결국 도서관은 살아 생전에 완성되었고 1996년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도서관은 미테랑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고. 무려 20층 건물 네 개동의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라.. 과연 프랑스라는 나라는 대단하다 싶었다. 뒤에 책 마을이 프랑스에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도 나오지만,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국가이기도 하고 토론의 나라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고서는 그 토론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제까지나 텔레비전에서 본 얕은 지식으로 떠들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저자도 말했듯 나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동화책과는 이별했고, 어른이 된 이후 그림책이나 동화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린이책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이야기를 보채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나는 약간 다른 게 대학 시절 어린이도서관에 대해 배울 때 어린이 도서를 접해볼 기회가 있었다. 어린이 도서가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많이 열악했지만 외국 도서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대단해보였다. 이후 우리 아이가 책을 읽을 때쯤엔 우리나라도 제법 아동도서가 다양해졌지만, 그 깊이가 깊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좋은 어린이도서관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책을 많이 사준 편에 속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동화를 많이 읽지는 않은 것 같다. 엄마가 많이 읽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좀 찔린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고 읽어주면서 우리가 읽었던 책들의 대부분이 다이제스트판이었다는 데 깜짝 놀랐다고 적고 있다. 그나마도 우리가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번역했기에 왜곡도 심했다고. 커서 완역판을 조금씩 사들였지만, 어쩐지 내가 읽었던 신나는 책은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는 축약판으로 읽어 제대로 만나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완역판으로 만나지 못한 명작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녀가 내 또래라는 것이 반가웠던 부분이 꽤 있다. 피노키오와 하이디 이야기가 바로 그것. 나 역시 피노키오를 월트 디즈니로 먼저 만났기 때문에 콜로디 원작 속의 복잡하고 어른스러운 성장담 피노키오를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으며, 하이디 역시 서구의 어린아이라기 보다는 일본 애니매이션(미야자키 하야오) 하이디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하이디가 74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 76년에 방송되었다고 한다. 내가 여섯 살 때! 그 뒤에도 여러 번 방송해주었지만 그때마다 얼마나 재미있게 보았던지.. 저자의 친구이며 길잡이인 앙투완 신부님이 여러 차례 일본 부자 아줌마들이나 가는 허구의 장소라며 취리히 하이디 마을 방문을 막았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동감했다. 실제 인물도 아닌 하이디이지만 나 역시 그 근처를 지난다면 꼭 가보고 싶을 것 같다. 헤이온 마을에서 이 책을 끝낸 것이 무척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런 마을을 가질 수 있을까? 헤이리가 그런 장소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기에 책은 영원할 거라 믿고 싶다. 책, 서점, 도서관, 책마을에 대한 모든 것,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오래된 책마을, 동화마을, 서점, 도서관을 찾아서>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11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영국이 이 책의 배경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이 책의 시작과 끝에는 책공간 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에 여행여정보다는 도서관·서점·동화마을·책마을 등 책공간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 경험이 중심이 되어 각 공간별 특성과 그 의미를 짚어본다.

유럽의 골목마다 살아있는 서점들, 영유아부터 실직자들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도서관들, 교통이 불편한 산골짜기 마을에 자리잡은 수십 개의 서점과 도서관들, 책으로 가득한 마을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책으로 둘러쌓인 유럽의 풍경은 사뭇다른 우리의 주위와 대비돼 부러움을 자아낸다.

책마을들은 그 자체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그들이 사랑하고 어린 시절을 함께한 동화, 사랑한 작가들의 흔적을 마을 단위로 보존하고 계승한다. 이 책은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를 책과 관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에서 찾아낸다. 우리는 책과 관련한 추억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일까? 유럽 책공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책공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프롤로그
책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나요?
그렇게나 먼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으려 하나
유럽 책공간 탐방의 여정
책의 구성에 대한 이해

제1부 신에서 인간으로, 특권에서 평등으로 진화하는 도서관
무한한 우주와도 같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꿈
01 움베르토 에코가 싫어하는 도서관, 좋아하는 도서관 〈소곤소곤 이야기〉 이탈리아 공공도서관
02 영혼을 치료하는 요양소, 수도원도서관 〈소곤소곤 이야기〉 스위스 공공도서관
03 프랑스에서 만난 빈민의 대학, 대통령 기념도서관
04 최초로 공공도서관의 법과 전통을 세운 영국 〈소곤소곤 이야기〉 영국 국립도서관의 보물

제2부 방랑과 유혹의 공간, 시점에서 인생을 배우다
성벽 아래 모여 새로운 사상과 정보를 교환하던 최초의 책장수들
01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문화를 판다 : 이탈리아 어린이 전문서점과 피렌체 에디슨 서점 〈소곤소곤 이야기〉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02 프랑스 시골 도시를 살려내는 문화 전통의 힘 : 아를 악트쉬드 출판사와 아비뇽 책방 골목
03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그들은 천사일지 모르니 :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소곤소곤 이야기〉 파리에서 만난 책 /
04 전통을 지키며 진화하는 책의 도시 : 런던 대형서점과 골목서점의 차이
〈소곤소곤 이야기〉 런던에서 만난 그림책 작가 / 에밀리 그라벳

제3부 동화를 사랑하고 작가를 추억하는 동화마을 사람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판타지로 상품화하다
01 집을 떠난 아이는 행복할 수 없어 : 콜로디 피노키오 국립공원
02 아름다운 알프스 소녀의 꿈 : 스위스 하이디 마을
03 개발에 반대하고 자연을 지켜낸 배아트릭스 포터 : 윈더미어 피터래빗 뮤지엄과 포터 기념관
04 책을 사랑하는 독자와 작가의 영혼이 만나는 작가 기념관 : 로알드 달 뮤지엄

제4부 책으로 되살려낸 농촌 마을 공동체의 희망과 이상, 유럽 책마을
시골 마을 작은 골목길에서 책과 예술의 향기에 취하다
01 목숨 걸고 책을 팔러 다녔던 산골마을 책장수들의 고향 : 이탈리아 몬테레지오 책마을
02 우리도 그들처럼... 책으로 꿈꾸다 : 프랑스 앙비에를 책마을
03 꺾이지 않는 장인의 열정으로 일궈온 책마을 20년 : 프랑스 몽 톨리외 책마을
04 세계책마을의 시작과 끝, 희망을 전하다 : 영국 헤이온 와이 책마을

에필로그
어디에 있을까, 우리들의 샹그리라…

부록
01 책 속에서 길을 찾다 : 도움을 주는 책 이야기
02 한국의 책문화를 이끌어가는 대안적 책 + 공간
03 유럽 책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첫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