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 작가님의 마이 페어리 레이디 3권을 읽었습니다...1권이랑 2권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라서 3권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무언가 내용이 소소하면서도 저한테는 되게 재미있었습니다ㅠㅠ정말 작가님이 천재인지 몰라도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지루한 지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작품 소개
저는 당신의 여우입니다.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여우지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인 국왕의 기사로 살아가고 있는 선왕의 사생아 로이드 헤센타인 백작.
어느 날, 학을 탄 소녀 아란이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로이드는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국왕의 명으로 동대륙의 공주이자 서왕모의 요지선인인 아란과 정략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아란과 엮일수록 로이드의 주변에는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급기야 로이드는 여우로 변하는데…….
동대륙의 선녀 아란과 서대륙의 기사 로이드의 혼인생활은 무사할 수 있을까?
동서양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마이 페어리 레이디’!
아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사랑받는 순간부터 저는 제 인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2. 미리 보기
로이드는 반짝 눈을 떴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자신의 몸을 살폈다. 털로 뒤덮인 앞발을 확인한 그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기뻤던 것도 잠깐, 조금만 방심하면 도로 여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잠이 들면 백이면 백, 여우로 변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로이드는 솜뭉치 같은 앞발을 휙휙 저었다. 분명 얼마 전까진 평범한 인간으로 살았던 그였다. 자다가 깨면 여우가 되는 병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때 옆에서 ……으응. 하고 뒤척이는 소리가 나더니 몸이 홱 끌려갔다. 폭신한 가슴에 꼭 끌어안긴 로이드는 저도 모르게 꼬리를 팔랑팔랑 움직였다. 아란에게서 나는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냄새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크흑, 예뻐!’
잠든 아란의 얼굴을 들여다본 로이드가 감격에 몸서리쳤다. 원래도 예뻤지만, 요즘의 아란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게 수컷 여우의 애처가 본능이라는 것을 모르는 로이드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 약혼녀에게 감동하고 말았다.
‘내 거야, 내 거!’
아란에게 비비적거리며 자신의 냄새를 묻히던 로이드가 움찔했다.
‘헛,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놀란 로이드는 황급히 아란의 품을 빠져나왔다. 진짜 짐승처럼 냄새를 묻히다니, 창피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는 앞발을 콱콱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백작님?
허전함을 느낀 아란이 옆자리를 더듬거리며 로이드를 찾았다. 얼른 그녀에게 다가간 로이드는 내뻗은 손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희미하게 미소 지은 아란이 다시 잠들었다. 로이드는 부드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짝이야.’
여우의 본능이 속삭였다. 로이드는 거기 동의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는 아란이 잠에서 깰 때까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택으로 돌아오자 혼인식 날짜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로이드는 그동안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앓다가 일어나자마자 귀왕에게 납치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로이드가 실종된 동안 다른 사람들이 발로 뛰며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혼인식 준비로 신나게 갈린 제임스는 그사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왕께서 갑자기 피로연 규모를 늘리겠다고 하셔서, 진짜 죽을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날짜도 촉박해 죽겠는데 아직 담당 요리사도 정해지지 않았고요. 어떻게든 해주세요!
그는 식당까지 쫓아와 불평을 토해냈다. 로이드가 의아하게 물었다.
요리사가 왜? 왕궁의 요리사 아니면 내 요리사가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게 다 백작님 때문이잖아요! ‘라샤펠’의 빈센트에게 결투권을 주셨다면서요!
뭐?
로이드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한숨을 쉰 제임스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로이드가 실종된 동안 ‘라샤펠’의 요리사 빈센트가 저택의 주방장인 쟝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누가 더 피로연의 요리사로 어울리는지 겨뤄보자는 것이었다. 혼인식에 내놓을 요리를 구상 중이던 쟝은 차갑게 분노했다.
「애송이가 감히 황녀님의 요리사인 내게 도전하다니. 좋다. 가볍게 짓눌러주지.」
「비겁하게 도망칠 줄 알았는데. 받아들이다니 제법 용감하군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황녀님의 요리사라는 영광은 이제 제가 받아 가겠습니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 연륜과 실력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기대하겠습니다.」
두 요리사는 멋대로 대결장소와 날짜까지 정한 후에 특훈에 돌입했다. 결국, 둘 중 하나가 승리할 때까지는 피로연 요리고 뭐고 하나도 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로이드는 그제야 예전의 약속을 기억해냈다.
아, 맞아. 빈센트에게 쟝과 대결할 기회를 준다고 했었지.
그게 왜 지금입니까! 네?
굳이 지금 하라는 건 아니었어. 아란이 초콜릿을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로이드가 조금 변명하듯 말했다. 빈센트 덕분에 아란이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초콜릿 공수용 배를 한 척 구매했다. 제임스가 단일품목 투자는 위험하다고 반대했지만,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카카오 음료 열풍이 불었다. 초콜릿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귀부인들의 수요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덕분에 대박을 맞은 로이드는 과일나무 공수용 배도 한 척 더 사들였다.
……황녀님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제임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꼬리를 내렸다. 암암리에 저택의 서열은 아란을 중심으로 재편성되고 있었다. 아란과 만남이 잦은 주방장과 정원사의 권력이 늘어난 것이 그 증거였다. 벌써부터 공처가 기질을 드러내는 로이드 때문이었다.
어쨌든 오늘은 어디 도망갈 생각하지 마세요. 가봉하고, 결제하고, 초대인원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합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라고요!
내 마누라는 아란인데 네가 왜 잔소리야?
투덜거린 로이드가 시종이 썰어준 송아지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의 인상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그것을 눈치챈 제임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입에 안 맞으십니까?
그럭저럭 괜찮아.
심드렁하게 말한 로이드가 입에 든 것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너무 질긴 데다 향신료 맛이 강했다. 한숨을 쉰 제임스가 말했다.
안 맞으시나 보네요. 귀가 나왔습니다.
악! 젠장!
포크를 내던진 로이드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느새 튀어나온 여우 귀가 그의 머리에서 팔랑거리고 있었다.
제임스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젠 진짜 거짓말은 못 하시겠네요.
망할 영감탱이, 순 엉터리로 가르쳐줬어!
로이드가 이를 갈며 귀왕을 욕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거짓말을 하면 곧바로 변신이 풀리면서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손으로 꾹꾹 누르듯이 귀를 집어넣었다. 변신에 익숙해져서 일일이 재주를 넘지 않아도 귀를 감출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입에 안 맞으시면 다시 구워 오라고 할까요?
됐어. 그래도 다음엔 좀 덜 익히고 향신료도 덜 뿌리라고 해.
지금도 거의 익히지 않은 상태라고요. 이거보다 덜 익히면 생고기를 드실 수밖에 없어요.
제임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고기라는 말에 로이드는 저도 모르게 귀왕이 던져주던 것을 떠올렸다. 귀왕은 로이드가 사냥에 실패할 때마다 비웃으며 고기 한 덩이를 던져주었다. 이름 모를 고기는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농축된 감칠맛이 있었다.
‘무슨 고기인지 물어볼걸.’
시무룩해진 로이드가 질긴 고기를 씹었다. 제임스가 풀이 죽은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입맛만 아니라 성격도 좀 변하신 것 같습니다.
……뭐?
여전히 더러운 성격이지만, 조금은 유쾌한 더러움이 되신 것 같아서요.
항상 삐뚜름하게 웃고 세상 다 산 것처럼 굴던 얼굴에 묘한 활기가 돌고 있었다. 여우의 본능이 눈을 뜨면서 생긴 변화였다. 누구보다 자신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던 로이드가 무어라 투덜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잔뜩 들뜬 얼굴의 아란이 들어왔다. 오늘의 머리장식은 팬지였다. 평소보다 더욱 귀엽고 발랄해 보이는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로이드가 그녀를 안아 올렸다.
오늘도 정말 예쁘네요. 아란. 나날이 더 예뻐져서 걱정입니다.
배, 백작님.
당황한 아란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제임스가 의혹 어린 눈으로 로이드의 머리를 쳐다봤다.
……왜 귀가 안 나오는 거죠?
당연히, 순수한 진심이니까.
로이드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했다. 아란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잠시 쭈뼛거리던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님도 멋있으세요.
전 여기서 탈출해야겠습니다.
제임스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란이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에게 뺨을 비비적거린 로이드가 물었다.
식사 같이하겠습니까?
아란이 수줍게 고개를 끄떡였다. 로이드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마주 앉혔다. 시종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접시를 치우고 아란의 식사를 가져왔다. 새 포크로 오렌지 조각을 콕 찍은 로이드가 그걸 아란의 앞에 내밀었다.
자, 아 하세요.
아란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얌전히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이전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나 그녀는 로이드가 심하게 다친 이후로 그의 응석을 모두 받아주고 있었다. 로이드는 일종의 감동을 느끼며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을 바라봤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
오렌지를 삼킨 아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작님. 오늘 바쁘세요?
아뇨. 전혀 안 바쁩니다.
왜 귀가 안 나오는 건데요! 이건 뭔가 잘못됐어!
제임스가 격렬히 항의했다. 하지만 이미 둘만의 세계에 빠진 두 사람에겐 닿지 않았다. 아란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기드온 님이 혼인 축하 선물을 보내주셨어요.
기드온이요?
로이드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노스필드 가문에서야 당연히 선물을 보내겠지만, 아란이 말한 것은 기드온의 개인 선물인 것 같았다. 그런 쪽으로 세심한 녀석이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제임스 역시 의아하게 말했다.
의외네요. 요즘 개가 되어 지내신다고 하던데, 선물 챙기실 정신도 있고.
기드온 님도 개로 변하나요?
아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당황한 제임스가 말을 더듬었다.
아, 그건 그냥 비유입니다. 소문으로는 기드온 님의 애인이 도망을 갔다지 뭡니까. 그것 때문에 거의 폐인처럼 지내신다고 하더라고요.
그것참 안됐군.
로이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러자 아란이 그를 유심히 쳐다봤다.
왜 그럽니까?
거짓말하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이 아니라서 놀랐어요.
……아, 정말 그렇군요.
여기서 로이드는 요력을 쓰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단서를 잡았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아란이 소매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얇은 책 한 권이었다. 고급스러운 표지엔 ‘좋은 부부가 되는 법’이라고 쓰여 있었다.
백작님이랑 같이 보면서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혼인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이라도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로이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책을 바라봤다. 기드온이 이렇게 나올 때는 뭔가 속셈이 있는 거였다. 하지만 성실한 아란은 당장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의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책을 쥐었다.
안의 내용을 봤습니까?
아뇨, 백작님이랑 같이 보려고요.
그럼 제가 먼저 살펴보죠.
같이 봐요. 저도 내용이 뭔지 궁금해요.
그…….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아란을 보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로이드는 억지로 웃으며 책을 펼쳤다. 안에는 아름다운 채색화로 손을 마주 잡은 연인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왼쪽에는 사랑에 대한 시가 우아한 서체로 적혔다. 인쇄본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쓰고 그려넣은 것이었다.
아란이 감탄했다.
정말 예쁜 그림이에요.
‘의외로 정상이잖아?’
로이드는 놀라움을 느끼며 한 장을 더 넘겼다. 이번에는 결혼식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맹세의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아란이 그림 위를 어루만졌다.
제 혼인식도 이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겁니다.
로이드의 속삭임에 아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부끄러워서가 아닌 기대감으로 들뜬 표정이었다. 그것이 너무 예뻐서 로이드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 맞췄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던 로이드는 신부의 옷을 벗기는 신랑의 그림을 보고 기겁했다. 급히 책을 덮으려다 파르륵 넘어가는 다음 페이지를 본 그는 으악 비명을 지르며 책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기드온 이 미친놈아!’
백작님?
의아한 표정을 지은 아란이 그의 무릎에서 내려가려 했다. 로이드는 황급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눈치 없는 시종이 그사이 책을 주워 아란에게 갖다 바쳤다. 로이드는 눈이 빠지도록 그를 노려봤다.
‘죽고 싶냐?’
놀라 움찔하는 시종을 눈치채지 못한 아란이 얼른 책을 받아 들었다. 그녀가 조금 속상한 얼굴로 로이드를 쳐다봤다.
친구의 선물을 던지면 어떡해요? 다른 것도 아니고 혼인 축하 선물인데.
아, 아란!
로이드는 구겨진 페이지를 펴려는 아란의 손을 움켜잡았다. 아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순간 로이드의 내면에서 악마가 속삭였다.
‘그냥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는 게 어때? 이건 아란이 모든 것을 알게 될 절호의 기회라고.’
‘닥쳐, 미친놈아. 그런 건 비열한 악당이나 하는 짓이라고!’
로이드의 양심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악마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훌륭한 악당인데 뭐. 이제 재활용 불가능한 악당이 되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란에게 그런 짓 하지 마!’
그때 로이드의 이마를 조그마한 손이 짚었다. 흠칫해서 고개를 들자 아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땀이 굉장히 많이 나요. 역시 아직 몸이 안 좋으신 거였군요.
아.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백작님을 귀찮게 해서. 얼른 올라가서 누우세요.
상냥한 그녀의 목소리에 로이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천사 같은 약혼녀에게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가. 양심에 통증을 느낀 그는 아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란, 사실은…….
#09. 결혼해주세요
#10. 마른하늘에 날벼락
#11. 별의 길
#12.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
카테고리 없음